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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안하는 K식품…상위 10곳 R&D 합쳐도 네슬레 7분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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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슬레는 年 2조 쏟아부어…韓 기업은 2685억 `걸음마`

국내 1등 CJ제일제당마저
R&D 투자 1433억원 그쳐
매출대비 R&D비율 평균 0.6%

반짝 호황에 안주해선 안 돼
제살깎기 `베끼기` 경쟁 대신
대체육 등 푸드테크 눈 돌려야
◆ 진화하는 K푸드 ③ ◆

사진설명
K푸드가 부가가치를 더 키우려면 연구개발에 더욱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베트남 호찌민시의 쿱마트에서 현지 소비자가 오리온 과자를 고르고 있다. [사진 제공 = 오리온]
국내 식품기업 매출 상위 10개의 연간 연구개발(R&D) 투자금액을 모두 합쳐도 글로벌 1위 식품회사인 네슬레 R&D 투자액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식품기업이 최근 K푸드 붐을 타고 세계를 누비고 있지만 R&D 투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22일 CEO스코어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CJ제일제당, 동원F&B, 대상, SPC삼립, 농심 등 국내 식품기업 상위 10개의 연간 R&D 투자금액 총합은 약 2685억원이었다. CJ제일제당은 약 1433억원으로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투자액을 기록했다.

그 뒤를 대상(283억3300만원·매출 대비 R&D 투자액 0.96%), 농심(281억8660만원·1.20%)이 이었는데 1위와 절대 금액상으로는 큰 차이를 보였다. 매출 대비 R&D 투자액이 1%를 넘긴 기업은 농심이 유일했다. 국내 식품기업은 글로벌 식품기업에 비해 매출 등 체급 차도 크지만 더 큰 문제는 부족한 R&D 투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절대적인 투자액은 물론 매출 대비 투자액 비중 모두 글로벌 기업에 뒤졌다.

반면 네슬레 R&D 투자액은 약 1조9620억원을 기록해 2조원에 육박했다. 한국 톱10 식품기업 R&D 투자금액 총합의 7배가 넘었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을 봐도 국내 기업은 평균 0.61%를 기록했지만 네슬레는 1.81%로 3배에 달했다. 글로벌 상위 10개 식품기업의 매출 대비 R&D 비용 비중은 평균 0.85%였다. 실제 금액 합계는 4조5939억여 원에 달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이 1%를 넘는 기업도 네슬레(1.81%), 펩시코(1.06%), 다논(1.39%), 몬델리즈인터내셔널(1.36%) 등 4개에 달했다. 국내외 비교 대상 20개 식품기업 중 유일하게 9400억원대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한 번지를 제외하면 글로벌 기업 9개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평균 0.93%에 육박했다.

글로벌 대기업과 비교해 R&D 투자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국내 식품기업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이 갈수록 내리막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2017년 0.75%, 2018년 0.67%에 이어 2019년 0.61%를 기록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와 해외 사업 호황으로 한국 식품기업들이 사상 유례없는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지속적이고 좀 더 과감한 R&D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K푸드 붐은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기원 서울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R&D 투자와 미래 트렌드를 주도할 기술 확보와 기업 가치의 연관성은 매우 크다"며 "한국 대형 식품기업이 당장 매출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 가치 향상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체 기술 개발은 물론 인수·합병(M&A), 투자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다른 기업이 넘볼 수 없는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업계가 베스트·스테디셀러 상품에 과하게 의존하거나 기존 상품 리뉴얼, 타사 제품 모방 등으로 '손쉽게' 사업을 벌이면서 정작 미래 성장 동력인 R&D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염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인기를 끄는 과거 히트 상품을 뉴트로 감성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나 타 업종과 컬래버레이션한 제품 역시 나름 신선하고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되지만 식품업계의 근원 경쟁력 확보와는 직접 관련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한국 식품업계에서 아직도 심심찮게 보이는 '베끼기' 관행 역시 한국 식품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병으로 지적된다. 대기업 사이에서조차 최근까지 식품 포장 '미투'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레시피 베끼기 논란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상품을 출시할 때 시장에 가장 손쉽게 연착륙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가 1등 상품 패키지와 비슷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이 같은 베끼기 관행 역시 낮은 R&D 투자와 관련한 바가 크다고 털어놓는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R&D와 독자적 신제품 출시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투입되고 성공 가능성도 불투명하지만 손쉬운 리뉴얼·베끼기 등은 당장 안정적 매출을 담보해주는 게 사실"이라며 "국내 식품업계가 이런 유혹에 쉽게 빠지는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지속성장을 담보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식품기업은 대체육·대체단백질 개발이나 블록체인 활용 등 첨단 푸드테크에 집중 투자하거나 친환경과 지속가능성 추구 등 ESG(환경·책임·투명경영)에 공들이고 있는 반면 국내 식품업체는 아직 그런 노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식품기업이 글로벌 푸드기업으로 거듭나려면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나 기술 협업 등과 더불어 좀 더 과감한 R&D 투자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승 기자 / 김효혜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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